보안 모르고 갔던 육본 정보보호병 솔직담백 복무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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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전역한 지 한 달 조금 넘었네요. 1년 6개월, 참 길었습니다.
지나고 나서 보면 짧게 느껴진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봤지만, 딱히 그렇지는 또 않습니다. 그저 "와, 그래도 어떻게 지나긴 지났구나" 하는 심정입니다. 전역하는 그 순간엔 섭섭한 건 없었고 그저 시원했습니다. 뒤도 안 돌아보고 나왔네요.
열심히 준비해서 운 좋게 육군 본부의 사이버작전센터에서 근무를 했고, 무사히 전역까지 달려오면서 앞으로 정보보호병에 관심을 가지게 될, 그리고 지금 가지고 계신 분들께 미약하지만 참고 자료라도 될까 싶어 썰처럼 공유해 봅니다.
정보보호병?
흔히 CERT(서트, 사이버응급조치반)라고 많이 알고 있습니다. 대부분 컴퓨터가 고장 났을 때 전화하는 곳 정도로 알고 계시지만, 사실 부대 내에서 발생하는 사이버 보안 관련 관제 및 대응이 주 업무입니다. 유해 통신, 망 혼용, 바이러스 등 軍 사이버 보안에 해가 되는 요소를 탐지하고 위험을 차단합니다.
병사가 할 일은 대부분 단순 반복할 일이 많은 워드, 문서 작업이어서 업무 하나하나가 복잡하진 않은데, 이런 일들이 좀 여러 가지 있어서 전체적으로 보면 좀 복잡합니다. 사실 꼭 보안을 잘 알아야 수행할 수 있는 보직인 것도 아니라서, 본인이 밤샘 하는 데 크게 문제가 없고 암기에 열심이라면 못 할 것도 없습니다. 저도 프로그래밍만 할 줄 알았지 보안은 하나도 모르는데 전역했잖아요.
오히려 프로그래밍 능력이 더 필요할 수 있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문서 작업이 많은데, 일일이 손으로 할 수 없을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실시간 관제에 힘을 쏟아야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업무를 자동화하기 위해 이것저것 만들 일이 생기기 때문이죠. 원격 장비 점검 도구에 온라인 전파 사항 스크래퍼, 일지 작성 및 자동 보고서 게시 도구까지... 덕분에 평생 할 Chrome Extension 개발이랑 Python 다 해봤네요.
나의 군생활
계근단
계근단 소속으로 육본 서트에 파견을 나가는 형식입니다. 즉 소속은 육군이 아닌 국직입니다.
계근단 다른 생활관이 어떤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서트 생활관에서 한 군생활은 정말 편했습니다. 10km 정도 군장도 없이 걷는 행군 한두 번 외에는 훈련도 없고, 불침번도 없고, 상황병은 당직이나 식사 추진도 안 하니 그냥 제 일에만 충실하면 됐던 것이 정말 좋았습니다. 남는 시간에는 자주 있지도 않는 작업이 할당된 게 아닌 이상 원하는 대로 놀 수 있으니 태블릿PC 들고가서 알고리즘 공부하거나 자거나... 거의 그렇게 생활했습니다.
생활관 사람들도 다들 좋은 사람들이라 정말 평화롭게 군생활 마치고 나왔네요. 다만 막판에 일부 간부 분들께서 좀 애들을 잡으려고 하는 건지 이상한 규칙같은 걸 내세우는 경우가 좀 있었어서 그게 불만이긴 했으나, 마침 저희 담당 간부도 좋은 분이시고 크게 신경 안 쓰려고 하니까 또 대체로 좋았습니다.
부조리 일체 발생하지 않도록 정말 분대장부터 신병까지 주의하면서 사니까 정말 그쪽으로 문제 터질 일이 없었습니다. 다들 그냥 친구처럼 지내다 왔네요. 계급이 업무 숙련도의 차이 및 부대 이해도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는 않았고 그나마 부대 방침이라서 후임이 존칭과 경어 정도만 쓰게 했습니다.
위로 휴가는 적당히 주는 편입니다. 저는 분기당 2~3일 받은 것 같네요.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상점이나 자격증 등으로 얻는 포상 휴가는 본인 노력에 따라 많이 받을 수 있다는 점이 매우 좋습니다. 그리고 나가는 게 매우 자유로웠습니다. 생활관 내에서 조율만 좀 했다 뿐이지 그 외 이유로 나가고 싶은데 못 나가는 경우는 어지간해선 없었습니다.
육본 CERT
꽤 웅장한 건물에서 일하게 되어 보통 처음 오면 다들 신기해합니다. 건물은 외적인 요소만큼이나 내부 시설도 잘 되어 있어서, PX와 이디야 커피, 버거 앤 프라이즈, 스포츠 용품점, 분식집 등 다양한 편의 시설을 병사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관제실에는 용사 전용 PC가 있으며 관제 및 임무 수행, 정보 검색에 활용합니다. 훈련소랑 후반기 제외한 1년 5개월 남짓한 기간 동안 함께할 동료 같은 녀석입니다. 그래서 가끔 잘 안 될 때 더 원망스럽기도...
일이 정말정말 많은데 일별로 편차도 큽니다. 워낙 큰 제대기도 하니 시즌에는 하루에 100건 넘게 통화하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관제하고, 조치하고, 전화 받고, 별도로 받게 되는 임무가 있으면 그것도 수행하고, 전파는 계속 내려오고... 공휴일이나 주말에는 정말 멍만 때리다 퇴근하는데 어느 날 한 번 발동 걸리면 정말 눈 코 뜰 새 없이 바쁩니다. 그런 날은 생활관 복귀하면 저녁 식사고 뭐고 바로 기절입니다.
전화를 걸든 받든 대부분 상대가 간부여서 부담되는 점도 큽니다. 사람도 많아서 온갖 케이스를 다 볼 수 있는데, 무리한 요구를 하는 분도 있고, 정말정말 간혹 거짓말을 하시는 분도 있고, 짜증이나 화를 내는 경우도 조금이지만 있습니다. 가장 곤란한 것은 "~가 안 돼요" 전화인데, 이런 경우 중 80%는 저희 업무가 아니라서 다른 부서에게 연결합니다. 민원 처리 하는 기분을 제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전화번호 찾기 서비스까지 홈페이지에 있는데 아예 서트를 114로 알고 난생 처음 듣는 어떤 부서 전화번호를 알려 달라는 분도 있습니다. 아니 저희도 몰라요;;
민감하면서도 다루기 어려운 시스템을 항상 건드리다 보니 조심해야 해서 더 피로합니다. 생각보다 시스템이 아직 불안정하고 전문성이 그렇게 높지 않아서 문제가 많이 생기기도 합니다. 게다가 뭐 하나 깜빡하는 거라도 있으면 다음 사람이 힘들어져서 갈등의 가능성이 보일 때도 있습니다. 이런 거에 민감하기라도 하면 파국입니다. 이럴 때 분대장과 선임, 간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분위기는 매우 자유로운 편입니다. 워낙 높으신 분들이 많은 육본이기도 하다 보니 어느 정도 계급까지는 정말 편하게 이야기하고, IT쪽 종사하다 오셨거나 관심 있는 분들도 꽤 계셔서 전공 소재로도 대화하기 좋습니다. 그러다 대회도 한 번 나갔는데 상도 타 봤고... 개인 공부에도 도움이 되고 여튼 저에게도 나쁘지 않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근무지에서 휴가는 마지막에 수고비같은 느낌으로 3일 받았습니다.
여담으로, 장성급 장교를 정말 많이 봅니다. 어떨 땐 모여서 다니시는데 진짜 장난 아닙니다. 이럴 때는 정말 역시 육본이구나 싶습니다.
군생활 총평
- 소속 부대가 엄청 편합니다.
- 그때그때 좀 많이 다르지만 전화랑 일 같이 하면서 엄청 바쁩니다.
- 사람들은 웬만하면 다 좋았습니다. 가끔 있는 모난 돌만 피했습니다.
마치며
거의 1년간 준비해서 간 부대는 정말 좋았습니다. 후회 없이 준비했고, 별 탈 없이 군생활했고, 다친 곳 없이 전역했습니다.
입대를 앞두신 분들께 응원의 말씀 드립니다. 꼭 많이 조사하고 잘 준비하셔서, 한 번 뿐인 군생활인 만큼 자신 있는 방법으로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다치지 않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